진화적 관점에서 본 현재 우리 곁에 함께하는 미술, 현대미술의 진화과정
■ 서 론 ■
미술은 진화하고 변화를 거듭한다. 심지어 전쟁 중에도 거듭난다.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인간과 함께 공존하였고, 진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렀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대상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미술에서 그렇다. 미술은 진화하고 변화를 거듭하기에 심지어 전쟁 중에도 참여 미술 형태로 전쟁의 필요성, 합법성 등을 선전, 포스터 형식으로 활용되었다. 그렇기에 미술은 인간이 존재할 때부터 인간과 함께 존재하였고, 진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렀다. 최소한 지금 보고 있는 미술작품이 과거 어디에서 왔고,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하는 것 정도는 알아두어야 한다. 위대한 미술 작품들의 배후에는 당대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사건들이 있었다. 아무리 고고하고 신비한 예술 작품이라도 그 작품을 배출해 낸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설령 그 특정 시대를 초월하노라고 선언하면서 창작한 작품 들에서 조차, 사실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래서 미술사의 일부인 현대미술의 진화 과장을 고찰한다. 이는 현재의 우리 삶을 이해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함이다.
■ 본 론 ■
1. 19세기 미술의 진화과정
근·현대 미술은 어쩌면 1789. 5.5 ~ 1799.11.9 발생한 프랑스 시민혁명에 의해 영감을 받아 다양하게 미술사조가 형성되었다. 혁명의 이념은 자유, 평등, 박애, 권리 등이었으며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장 자크 루소의 이념, '자유와 평등, 박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 등으로 기존 특권층에 의한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체제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군대가 유럽 전역으로 퍼져 정복전쟁에 나섰고, 예술에서 이 황제적인 허세는 새로운 유럽 양식에 반영되어 가구, 패션, 장식미술 분야에 까지 확산되었다. 나폴레옹은 보다 광범위한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종교와 귀족정치에 속박되어 있던 군주제에서 권력과 근대화와 이성이 사실상 동의어로 간주되는 냉철한 체제로 바뀌어 갔다. 이 시기에 사진술의 발명 또한 예술 세계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새로운 발명이 그들의 작품 시장을 파괴할 거라고 확신했다.
1) 사실주의 : 서양 미술사는 수백 년 동안 신화, 전설, 종교, 또는 귀족의 취향에 맞는 회화를 위주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1848년, 파리에서 갑자기 혁명이 다시 일어났고 소외받던 사람들이 새로운 영향력을 얻었다. 1855년 프랑스 화가 장데지레 귀스타브 쿠르베의 '사실주의 선언'에서 보여 주었듯이, 그는 기존 전통회화의 틀을 바꿔, 실재 눈에 보이는 대상을 회화에 표현했다. 쿠르베는 시골의 삶을 주제로 그린 대형 작품들로 살롱전이 가지고 있었던 힘의 균형을 깨뜨렸다. '보리를 까부르는 여인들, 1855년'에서 뒤주로 보이는 나무 상자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소년에게서는 우스꽝스러움이, 방 뒤쪽으로 갈수록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도록 표현한 방식에서는 원근법의 혼란이, 채질 하는 소녀에게는 힘이, 채 위에서 모든 것이 뒤집힌다. 전통의 회화 방법인 대상과 표현, 기법 모든 것을 뒤집은 화법이다. 프랑스 대혁명의 사상인, 자유, 평등, 박애, 혁신 등 사회개혁을 회화에 반영하는 참여미술 형태로 나타나 혁명 이후 풍경화 등이 유행하였다. 전통주의자들이 회화의 매체를 감추고 자연의 표면이 평평하다는 것, 그림은 붓과 물감으로 그려진 표면이라는 것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에두아르 마네'는 회화의 절대적 조건인 캔버스의 표면, 물감, 붓터치를 회화의 특성으로 과감히 보여주면서 모더니즘 미술의 선구자가 되었다. 작품 '올랭피아, 1863'에서 보여준다. 1871년 노동자들이 봉기해 세운 파리코뮌이 진압당한 후 회화는 정치에 참여한다. '근대사회의 단면 포착', '사진과의 제휴', 자포니즘의 영향' 등은 색채의 자유로운 사용으로 혁명의 자유사상과 동일시 간주되어 '인상주의' 파로 근대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터너(1775~1851), 눈보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수평선을 숨기고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주변을 구도로 구성함으로써 폭풍의 격렬함을 전달, 표면도 그림과 똑같이 요동쳐서,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해 미색과 황색을 두텁게 긁어 어두운 부분으로 끌어당긴다.

2) 인상주의의 : 화가들은 더 이상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려 하지 않았다. 대신 망막에 비친 일시적인 자극의 패턴에 반응하고자 했다. 오브제가 없으니 선이 있을 리 없었다. 모든 것은 색채로만 존재했고, 유동적인 물감으로만 형체를 갖추었다. 눈에 보이는 것 즉 그림은 자연의 시적인 제안에 반응하는 감수성, 즉 마음의 문제였다. 생기 넘치고 환희에 떨리는 손을 가진 몸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 시기는 인상주의 운동의 다양한 지류가 합쳐 모네가 외젠 부댕과 함께 야외에서 그리는 외광과 회화를 연습한다. 모네의 1873년 작품 '인상, 해돋이', 모네는 그림을 '대기'라고 말했다. 그의 손에서 자연은 안개와 연무, 파동을 통해 굴절된 햇빛이었다. 주제가 도시건 시골이건 상관없이 모든 주제는 지속적으로 도도하게 명멸하는 무지갯빛 물감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가졌다. 반면 살롱에서는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이 계속해서 논란을 일으킨다. '귀스타브 모로(1826~1898), 오르페우스' 그리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리라를 너무 부드럽게 연주해서 그의 노래가 야수를 매료시킬 정도였다. 불행하게도 그는 사나운 바쿠스의 여사제 마이너데스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그녀들은 그를 갈기갈기 찢어 유해를 강에다 던져버렸다. 귀스타브 오로는 이 전설의 후기를 스스로 창안, 젊은 트라키아 소녀가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물에서 수습하여 그의 리라에 경건하게 올려놓는다, 그녀의 이국적이고 화려한 옷과 장신구 그리고 몽환적인 표정은 알 수 없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3) 자포니즘(Japonisme) :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이 도자기, 차, 부채, 우키요에, 일본 에도시대 판화 등을 유럽에 소개하면서 일본의 취미 문화가 알려지고 유럽인 들은 이러한 것은 다양한 회화를 시도하던 중 신선한 충격이 되어 단순히 취미를 넘어 그 양식과 기법을 자신들의 회화에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다양하고 자유롭게 신풍을 일으켰는데 이는 회화뿐만 아니라 조각, 판화, 소묘, 공예, 건축, 연극, 음악, 문학 등 예술 전반에 폭넓게 나타나 19세기말 동유럽, 미국 화가들 대부분이 일본식 기법을 활용하였다. 전위예술(아방가르드)을 추구하던 미술가 들은 당시 일본판화(우키요에)에서 평면성, 시점의 자유로움, 생동하는 강렬한 색채, 모티프의 다양성, 비대칭과 불규칙성을 활용한 자유로운 리듬을 보았고 이는 마네, 모네, 드가, 르누아르, 귀스타브 카유보트 등 인상주의자들과 세잔, 고갱, 반 고흐 등 후기인상주의자들에게 우키요에 심취하게 하였다.

4) 탐미주의 운동 : 1880년~1885년, 유미주의라고도 하는 이 운동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러 회화, 문학 그리고 장식미술에 영향을 미친다.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 앨버트 무어, 그들은 자신들의 그림을 음악 편곡처럼 구성한다. 이 운동을 둘러싼 미에 관한 숭배는 윌리엄 길버트와 아서 설리번의 희극 오페라, 인내, 1881와 잡지 펀치의 카툰에서 풍자되었다.

2. 20세기 미술의 진화
이 시기는 근대성으로 정의되는 시대이다. 1900년 아방가르드의 대두는 시각의 혁신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재현은 갈수록 전통적인 예술 관습들로부터 더 자유로워진다. 예술가들은 정신의 격렬함을 분석하고 근세의 경험들을 시각화하기 위해 인간 내부로 향하기 시작한다.
1) 야수파 : 1905년 파리에서 시작, 앙리 마티스가 이 학파를 이끈다. 각자 고유의 개성대로 작업했고 야수가 포효하는 듯한 야성적이고 강렬한 순색을 추구했다. 물감 그 자체가 지니는 강렬한 색채의 물질성, 순수한 색채의 보색대비가 보여주는 야만성, 폭력적인 붓질은 색채의 향연이라기보다 색채의 침공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로 당시 미술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마티스는 1897년 작품 '후식', 야수주의 화가들의 강력한 색채의 혁신은 그들을 이전의 학파들과 구분 지어 준다.

2) 다리파 : 독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을 거부하고 본능 그 자체를 자유롭게 분출하면서 인간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을 꿈꾸었다. 내적 고뇌, 고통, 부조리,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대한 반항과 분노를 표출, 야수주의와 쇠라의 점묘법에 관심을 보였고 반 고흐의 본능적 붓질에 심취했으며 고갱의 원시주의, 강렬한 색채와 토속적인 조각, 도예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에드바르 뭉크(1863~1944)는 심리적 공포와 불안, 고뇌를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키르히너를 비롯한 다리파 작가들은 누드화에서 문명의 허식을 벗어던지고 자연의 본능성, 순수성으로 돌아가자는 자연주의의 반영이다. 키르히너 '모리츠부르크의 목욕하는 사람들, 1909', '나무 아래 누드들, 1910' , 등에서 평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3) 입체주의 큐비즘(브라크, 피카소) : 큐비즘은 평면성을 지향하지만 2차원과 3차원을 왕래하듯 약간의 볼륨감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세상의 모든 오브제(사물, 객체, 물체)는 3차원 형태인데 이를 캔버스라는 2차원의 평면 위에 옮기기 위해서는 원근법과 명암법이 필요하다. 큐비즘은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하는 대신 대상의 형태를 부수고 회화의 표면 위에 재배치했다. 이렇게 해서 약간의 볼륨감은 있지만 큐비즘이 궁극적으로 성취하고자 한 것은 평면성이다. 전통회화가 주변세계를 정확히 묘사해 왔다면 종합적 큐비즘은 주변 세계의 여러 사물을 직접 캔버스에 부착한다. 화가들은 신문, 벽지, 노끈 등 실제 사물을 캔버스에 부착한다. 이것을 콜라주라고 부른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작품은 아비뇽 거리에 있는 바르셀로나의 홍등가 여성들을 그린 인물연직에서 피카소의 파편화된 묘사는 입체주의의 발전을 향한 중요한 단계였다. 피카소가 그의 경력 내내 그렸던 여성의 신체는 삐죽삐죽한 평면의 연속으로 나타나고, 그들의 얼굴은 아프리카 가면과 합쳐진다. 강렬하게 성적인 이 장면은 근대 예술의 시각 언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비대칭적이고 추상화된 평면들을 통해 다루어진다.

4)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반 미술과 환상 : 1915. 2월 카바레 볼테르는 정기간행물을 발간했다. 자신들의 예술활동을 '다다이즘'이라고 했다. 다다이스트들은 세상을 향해 분노를 쏟아내며 기존의 질서를 뒤집는 혁명을 선동했다. 젊은이를 죽음의 전장으로 내모는 기득권 계층을 격하게 비난했고 허무주의적인 무정부주의로 대응, 질서, 법칙, 이성에 근거한 모더니스트 운동을 조롱했다. 다다이스트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빚어낸 모순에 좌절했고, 유토피아 건설, 사회 안정, 평화 등을 약속한 정치가들이 모두 거짓말쟁이였다는 것에 분노했다. 또한 인간의 삶이 우연의 연속이고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띠고 있으므로 의도적인 질서체계, 정연한 구조는 모두 거짓이자 위선이라고 주장 반문명, 반이성, 비합리성, 우연성 등을 추구하며 전통적인 예술의 심미적, 미학적 가치를 거부했다. 이들은 우연성을 위해 신문기사 등을 조각조각 잘라 자루에 넣고 흔들어서 섞은 다음 조각을 하나씩 꺼내 종이 위에 나열했다. 문법과 단어가 마구 뒤섞인 혼돈과 혼란 그 자체를 문학이라고 제시한 것이다. 하노버의 쿠르트 슈비터스(1887~1948)는 수백 점의 콜라주 작품에 '메르츠, 1921'라는 제목을 붙였다, 현실에서 쓰고 버려진 쓰레기들을 주워 모아 콜라주 하면서 현실의 평범한 삶과 예술의 통합을 꿈꿨다.

5) 아르데코 : 1925년 파리에서 열린 전시회 이후 이름이 지어진 아르데코는 순수예술, 디자인, 건축으로 설명된다. 아르데코는 아르누보에 대한 반동이자 입체주의, 미래주의, 대스테일(신조형주의), 바우하우스, 오리엔탈리즘, 구성주의, 발레 뤼스, 그리고 고대 이집트, 아즈텍, 아프리카 민속 예술에서 나온 개념들의 조합인데 이 개념들은 기계시대의 매끈한 형태를 강조하는 것으로 결합됐다. 헐리우드의 매력, 신여성 시대의 에너지, 할렘 르네상스의 열정을 표현하면서, 아르데코는 대량 생산과 적당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많은 가전제품들을 포함해 그 시대의 진보와 모더니즘의 감성을 찬양하기도 했다. 대공황의 불안과 또 다른 전쟁의 징후를 회피하면서 기계 시대, 특히 기술 혁신과 새로운 재료 그리고 간결한 윤곽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였고 찬양했다. 이 시기 가장 다작한 디자이너 클래리스 클리프(1899~1972), 1927년에 '비자르'라고 불린 밝고 대담한 디자인을 최초로 선보였다. 아르데코 작품으로 르네 랄리크의 '빅토르, 바람의 마음, 1920~1931', 유리예술, 병, 보석, 상들리에, 시계로 유명, 클래리스 클리프, '재즈의 시대, 1930' 평평하고 각이 진 이 사람 모양의 형상들은 테이블 중앙에 놓이거나 대중적인 댄스 밴드 음악이 연주되는 라디오 주변에 전시되도록 디자인 됐다.

6) 추상표현주의 :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은 정확한 계산, 합리적, 이성적 판단, 과학적 논리에 회의를 느끼고 본능적인 충동을 무한히 자유롭게 표출하기를 원했기에 미술의 새로운 중심지로 승전 국인 미국 뉴욕에서 이를 회화에서 활발하게 시도하였다. 서양미술에서 누워 있는 여성은 많이 그려졌지만 남자의 경우는 드물다. 가끔 누워 있는 남성을 그린 예가 있지만 그것은 누워 있는 여성과 달리 죽었다는 표현이다. 추상 표현주의의 하나는 액션페인팅으로 캔버스를 화가가 행동하는 장으로 삼아 격렬한 제스처를 이용해 분출하는 감정과 본능적 직관을 표현, 다른 하나는 삭면회화로 1950년대 중엽 이후 점점 야수주의적인 색면에 천착하며 색면주의적 성격이 강해졌다. 서양미술에서 누워 있는 여성은 에로티시즘을, 누워 있는 남성은 죽음을 의미한다. 마네의 '투우사의 죽음, 1864~65', 안드레 만테냐(1431~1506)의 '죽은 그리스도, 1490' 등에서 죽은 자를 누워 있는 남자로 표현했다.

7) 팝아트 (Pop Art) :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팝아트는 대중문화를 찬양하고, 재치 있고 윤곽이 선명한 하드에지적인 표현을 선호하면서 회화적인 특성을 없앴다. 이 운동은 평화 시기의 번영 덕분에 사람들이 차를 구입하고 집을 장식할 수 있게 된 전후 세계의 물질주의를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디어산업이 발달하면서 대중의 사회적 정치적 참여도 활발해졌고 예술도 과학기술이 바꾸어 놓은 일상의 삶과 통합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어 팝아트는 영국 런던에서 시작하여 뉴욕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이것이 내일이다' 전시회에서 팝아트의 직접적 효시라고 할 수 있는 해밀턴의 작품 '오늘의 가정을 그토록 색다르고 멋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1956' 해밀턴은 이 작품에서 동시대의 사회적 현상, 일반 가정에서의 일상의 삶, 순수미술이 상호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잡지, 신문에 게재된 광고, 카탈로그에서 잘라낸 이미지들을 콜라주 하여 생생한 대중소비사회의 단면을 전달한다. 작품에는 통속적인 대중잡지에 나오는 근육질의 남성과 육감적인 몸매의 여자가 집주인인 듯이 등장, 거실에 놓인 축음기, tv, 진공청소기 등의 가전제품은 대중소비사회의 풍요를 보여주고, 소파에 올려놓은 신문과 벽에 걸려 있는 영화포스터, 창밖으로 보이는 영화관 간판은 미디어산업의 발달을 한눈에 알게 해 준다. 리히텐슈타인은 역사화와 초상화의 역사적 전통을 참조 한 큰 그림들에 말풍선과 벤다 망점으로 완성한 만화의 이미지를 적용함으로써 '고급'예술을 창조하기 위해 '저급' 예술인 만화책 문화를 도입했다. 그와 동시에 올덴버그는 '나는 미술관에 멍청하게 앉아 있는 것 이상의 다른 뭔가를 하는 . . . 예술에 찬성한다.'로 시작하는 '나는 예술에 찬성한다'에서 그의 비전을 강조한다. 올덴버그는 햄버거를 표현한 '7피트 폭의 플로어 버거, 1962'와 같이 일상의 사물들을 거대하고 부드러운 조각들로 만듦으로써 어떤 것이든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8)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리즘 : 팝아트와 미니멀아트는 동시대의 사회적 현상, 체제, 생산방식, 생산물을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미술의 전통과 관습을 전복했다. 또한 사물과 미술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 동시에 장르의 혼용을 시도했다. 미니멀아트는 현대산업사회의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해서 조수를 고용하고 기계를 사용하여 제작했는데 이것은 워홀을 비롯한 팝아티스트들과 공유하는 작업방식이다. 실제와 연관된 작품을 제작하려는 어떠한 시도를 버릴 뿐만 아니라 추상표현주의자들의 몸짓 표현을 형성하는 것을 피하여 기하학적 추상의 명확한 선을 보여준다. 색의 효과와 색채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감성적이고 형이상적인 반응을 끌어내고자 하여 관객들은 그림의 색채, 평평함 그리고 고른 표면을 만끽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회화와 착시에서 벗어난 변화, 조각적인 것을 향한 움직임이 수반되지만, 라이트아트와 대지미술과 함께 공간 개념을 새롭게 보여주는 설치 작품의 형태로 나타난다. 미술사학자 바바라 로즈(1938~)는 미국의 실용주의 전통을 팝아트와 미니멀리즘의 공통된 뿌리로 보았다. 미니멀아트는 현대미술사의 매우 중요한 미술운동으로 벽돌, 나무토막도 예술이 될 수 있고 심지어 미술관의 흰색 벽면,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캔버스나 종이도 미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물 그 자체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미니멀아트의 성격상 대부분 작품은 조각과 같은 3차원적 형식을 보여준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해체하고 모호하게 하는 특성을 보여준다. 저드는 '특별한 사물, 1965'에서 미니멀아트를 회화도 조각도 아닌 3차원의 작품으로 제시했다. 또한 르윗은 '조각이 아니라 구조물'로, 플래빈은 '제안'으로 표현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의 가장 주요한 특징은 시간의 흐름, 아이디어, 개념 등 비물질적인 것을 가시적인 미술로 표현하는 것이다. 과정미술은 씨앗이 자라는 과정이나 얼음이 녹아내리는 과정,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것을 뜻하며 반형상 미술이다. 팝아트와 미니멀아트가 대두되면서 미술가는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감독할 뿐 실제 제작은 조수와 기술자들이 맡는 상황이다.

9) 포스트모더니즘 : 해체이론을 바탕으로 한 후기구조주의에서 촉발,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학생, 여성, 흑인 그리고 제3세계가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1970년대 들어 TV, 비디오, 케이블 등 대중매체를 적극적을 활용하여 미술의 장르를 해체하고 융합한다는 것이다. 또한 위성중계로 미국, 프랑스, 한국 등에서 동시에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한 백남준의 시도에서 보듯이 시공간의 압축, 파편성도 그 특징이다. 논리성, 이성,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인쇄문화가 모더니즘 시대를 이끌었다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미디어 발달에 힘입어 탄생한 감각적인 영상예술이 중심이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은 모더니즘 미술의 특징인 지나친 자아도취가 작가 자신의 굴레에 얽매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슈나벨은 그것이 자아에 대한 집착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고 자아에서 벗어나 무궁무진한 이야기들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하고자 했다. 슈나벨은 회화에 그치지 않고 조각과 영화에도 도전하면서 고대 신화와 역사 등을 절충하여 웅대하고 대담한 이미지로 재해석했다. 그는 1996년에 바스키아의 생애를 다룬 영화 '바스키아'를 발표했고 2007년에는 '잠수종과 나비'로 칸영화제에서 전 세계의 감독을 물리치고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피슬은 뉴욕 태생으로 캘리포니아 아트 인스티큐트에서 미술수업을 받았다 그는 고독, 공허 등 도시인의 심리적 불안을 사실주의적인 구상양식으로 표현, 피술은 노골적으로 표현된 성적 요소에서 현대인의 무력감, 권태, 고독, 상실된 도덕적 가치 등으로 촉발된 내적 갈등을 표현하고자 했다. 피슬의 '나쁜 소년, 1981'은 현대사회의 풍요 뒤에 짙게 드리워져 있는 그늘을 폭로하고 있다. '나쁜 소년'에서 나체의 여인은 성적 유희에 몰입하고 있는 소년은 그 장면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등 뒤의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고 있다. 여인과 소년을 어머니와 아들로 본다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해석, 여인, 즉 엄마는 소년, 즉 아들이 욕망하는 대상이다. 이것은 그러한 욕망이 도덕적 금지임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9) 대지미술 : 예술가 들은 환경가 인류의 관계를 탐구하는 조각의 한 형태인 대지 작품들을 제작한다. 작품들은 돌, 열매, 이끼, 막대기 같은 자연의 재료로 만들어진다. 이 분야 예술가 들은 외부에서, 때로는 도시 그리고 자주 야외에서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갤러리 공간의 제약적인 특성을 강조했다. 풍경을 그려서 자연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그들의 원재료로 사용, 돌무더기 또는 땅에 석회를 뿌리거나 참호를 파서 선을 그렸다. 때로는 말라버린 호수와 강바닥, 또는 월터 드 마리아의 '벼락 치는 들판, 1977'처럼 심지어 사막 같은 척박한 환경에 설치하기도 한다.

10) 낙서화(graffito) : 낙서화의 기원은 선사시대 동굴벽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198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낙서화는 대중의 삶의 터전인 뒷골목, 지하철 플렛폼 등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소외되고 무시당했던 주변부의 미술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뒤뷔페는 낙서를 미술의 형식으로 받아들여 인간 실존의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 그러나 낙서는 소외된 계층이 달리 감정 등을 표현할 수 없을 때 뒷골목 벽에 한 것일 뿐 그 자체 모두를 낙서화라는 작품으로 볼 수는 없다. 굳이 전시회 등 장소가 있는데 문화재 등 아무 곳에나 낙서를 해서 본래 취지를 망쳐서는 안 된다. 낙서화가들은 낙서의 형식을 차용하여 음지에 잇었던 낙서를 양지의 제도권으로 편입시켰다. 이것은 낙서화의 한계였지만 낙서화라는 이름이 붙여져 제도권의 미술형식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11) 행동주의 예술 : 1990년대 제작된 예술은 이전 수십 년간 움직이고 있는 힘과 시각성의 역학관계를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사회단체 액트 업, 힘을 발휘하는 '에이즈 연합'이 에이즈를 감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보다 나은 법안, 연구, 권리를 옹호하는 중요한 일을 계속한다. 대중매체에서 강력한 이미지와 슬로건을 만들어 에이즈 행동주의를 옹호하는 행위 예술 단체인 그랑 퓨리의 설립으로 이어진다. 예술과 행동주의의 결합, 예술의 생산을 둘러싼 언어와 문화는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데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세라 루커스 등이 이 분야 예술가이다.

■ 결 론 ■
고대로부터 도도히 살아남아 흘러온 미술, 고대 사람들은 지금의 미술세계를 경험할 수 없겠지만, 현대 사람은 고대의 미술을 알 수 있다. 고대 동굴 속 벽화로부터 미술의 진화의 역사를 알 수 있기에, 미술은 살아 흐르면서 인간사처럼 시대와 문화, 인간 감정을 반영하고 끝없이 변신과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현재도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쉰다. 수세기를 걸쳐 흘러 , 때로는 사라지는 듯했다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여 현재 진행형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의 삶과 같이 하였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과거 독재정치나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쟁터에 청춘이 희생토록 독려하고 이용당하기도 한 아픈 과거도 있지만, 그래서 미술을 우리 삶에 풍요로움과 인간사회를 유익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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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 「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 신혜연 옮김, 위즈덤하우스 」, 「미술사 연대기, 2019.9.2. 초판, 옮긴이 이기수, 발행인 이상만, 마로니에북스」, 「현대미술의 여정, 김현화 지음, 한길사 20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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